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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空 이세종

(1879~1944, 화순 청풍면)



옛사람이 덫을 놓았던
큰 매화산 봉우리 아래
매화꽃 봉오리 자락에서
조선의 왕족 후손으로
1879년 7월 1일
청풍淸風에서 태어난
그 나그네를 아시오?
 
그는 어릴 때 조실부모하고
두 형들의 돌봄을 받으며
고아로 자라나 머슴살이하다가
학문을 중시하는 문씨 집안
열세 살 꼬마신부 손을 잡고
깊은 밤, 고향을 떠났다오.
 
도암道庵에서 신혼살림을 차리고
하늘엔 어두운 귀로
땅의 소리를 들었고
하늘엔 어두운 눈으로
땅에서 돈놀이하며 논밭을 장만하고
가난에 마침표를 찍었다오.
 
파란 말을 잃어버린 것도 모른 채
헛말을 하고
에덴의 숨을 잃어버린 것도 모른 채
냄새를 맡고
없는 자식 사랑하다가
어느 날, 성경을 선물로 받았다오.




 
그 성경을 읽다가
찰나적으로 알아차린 존재의 근원!
 
성경을 삶으로 읽고
삶을 성경이 읽게
묵상하며 명상하고 성찰하며
계절이 바뀌는 것조차 모르던
어느 겨울날,
그는 가마 속 흙덩이처럼
오랜 열병으로 죽었다고 소문났다오.
 
그는 제자의 싱싱한 등에 업힌 채
개천산開天山 기도처로 올라가
깊은 밤,
깊은 숨기, 붉은 사랑의 망토에 싸여
크고 작은 도자기들을
깨트리고, 깨트리고, 깨트렸다오.
 
하늘에 존재를 기댄 채
하루하루 고고성1)으로,
영성 깊은 숨비소리2)
영혼을 돌보는 법을 체득하며
하늘 떠난 고아였음을 알아차리고
땅의 고아들을 돌보는
상처 입은 치유자로 살았다오.
 
남녀노소 빈부귀천 경계를 긋지 않고
피조물들을 긍휼히 여기며
자기 것이라던 모든 것을 없애고
삶이 진리로 성스러워지게3) 몰입하고
해일이 몰려오는 바다에서
거룩한 성품으로 관상적 삶4)을 체현하였다오.
 
각수角水 바위틈으로
흐르는 생수를 마시며
하늘을 우러러
산 같은 아름다움을 열망하며
그는 공空의 길을 걷고 걸으며
매 순간 사랑을 선택하고
하늘나라를 땅에서 누리며
이웃의 밥상을 산처럼 차렸다오.
 
평생 모은 재산이
나그네 것이 아님을 깨달아
이웃들에게 몽땅 내어주고
화학산 고요한 한샘 곁 움막에서
쑥버무리로 목숨을 부지하며
영성으로 샘물과 공기를 마시다가
1944년 3월 15일
올라간다, 올라간다, 올라간다,
외치며 귀천하였다오.
 

(성금란 시인 씀)

1) 고고성 : 아기가 태어나 처음 폐로 숨 쉬며 내는 첫 울음소리
2) 숨비소리 : 잠수하던 해녀가 바다 위로 올라와 참던 숨을 휘파람같이 내쉬는 소리
3) 성스러워지게(=신화) : 전인적으로 삼위일체 하나님의 형상이 되게 진리에 연합해 가는 여정
4) 관상적 삶 : 삼위일체 하나님의 현존과 인도하심을 경청하며 그 뜻을 알아차리고 응답하여 내적인 삶과 외적인 삶이 분리되지 않는 참 자아, 진아(眞我)의 삶을 살아내 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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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의 거울

파랑 거울처럼 빚어져
거룩한 결실로 풍성한
*우리의 거울을 본다
탐욕의 쟁기질이 능숙한 밭에서
파랑 거울을 잘 씹어 마시며
빛 아닌, 해
빛 아닌, 달
빛 아닌, 별
노폐물로 배설하고,
참 빛! 맑게 드러낸
우리의 거울을 본다.
유혹의 쟁기질이 능숙한 밭에서
우리의 거울을 본다.
하염직하여 하염없이
보이지 않게 보이는
그 거울에 깊이 뻗은
참된 **미덕의 뿌리에서

(성금란 시인 씀)

…….
*우리의 거울: 李空
**미덕: 창조주를 향한 최고의 사랑, 겸손으로 최고 이웃사랑

이현필

(1913-1964, 화순 도암면)

이현필은 이세종과 마찬가지로 1913년 화순에서 태어났다. 어려서부터 머리가 비상하고 영리하며 지혜가 있었다. 13세 때 가난하게 된 집안 살림을 돕기 위해 영산포로 나가 닭장사를 했다. 그러는 동안 무교회주의자였던 일본인 스나가미 목사에게 전도되어 복음을 접했다.
2년 후 고향으로 돌아와 인근 방산에 있는 교회에 나갔다. 이곳에서 가끔 그 교회를 찾아왔던 이세종을 보게 되었다. 나중에 이 세상 사람 같이 살지 않은 이세종의 기이한 이야기들을 듣고 그를 찾아가 가르침을 받게 되었다. 후일 최흥종과 강순명은 이세종의 제자 이현필의 출중함을 발견했다. 두 사람은 이현필을 농업실수학교 기숙사에서 공부를 하도록 했고, 강순명의 독신전도단에서 일하도록 했다.
이세종이 중요시했던 순결사상에 이견을 갖고 있던 이현필은 27세에 결혼을 했다. 그런데 1940년 부인이 자궁외 임신으로 사산하게 되었는데 산모의 생명까지 크게 위협이 되었던 사건으로 큰 충격을 받았다. 다행히 부인은 생명을 건졌다. 그 후 이세종 선생처럼 해혼하고 곧 바로 이를 실천해 갔다.
이현필을 가장 초기부터 따랐던 분은 당시 남원 읍내에서 목공소를 하고 있던 오북환 집사였다. 오북환은 이현필을 만나 그 감화력에 동화되어 목공소를 내놓고 집회장소로 삼기도 했다. 그는 일생 이현필을 본받아 하느님의 충직한 종으로서 동광원을 가꾸며 헌신했다.
이현필은 나이 30세 전후 홀로 산에 은거하면서 금식과 명상생활을 하였다. 화순의 화학산과 남원의 지리산에서 수년씩 홀로 기도 생활을 했다. 산에 파묻혀 기도하였고, 특별히 소명을 받아 거룩한 삶을 사모하는 10여 명의 소년 소녀들을 제자로 삼아 성경을 가르치고 훈련하였다.
남원에서 수십 리 들어가면 서리내라는 곳과 그 앞산을 타고 내려오면 갈보리라는 동산이 있었는데 이곳에서 제자들과 생활하면서 기도 및 경건 생활과 노동 그리고 성경 공부 등을 통해 제자훈련을 시켰다. 그는 제자들에게 예수의 정신을 본받는 경건 훈련을 진행할 때 매우 엄격하고 철저했다.
그 자신 스스로가 짚신을 신었고 산중 길을 걸을 때는 추운 겨울에도 맨발로 다녔으며, 단벌옷과 불을 때지 않는 차가운 방에서 지냈다. 청빈하고 가난하게 사셨던 예수의 삶을 본받고자 몸소 모범을 보인 것이다.
이현필은 식생활에 있어서 일식(一食, 하루 한끼 식사)주의자였고 또한 육식을 전혀 하지 않는 채식주의자였다.
또한, 그는 많은 신비적인 체험에 대해서 일체 침묵하였고 꿈 이야기도 하지 않았으며 다만 성경을 가르치고 온종일 하는 대화가 그대로 설교가 되었다. 그는 이세종의 생활에서 본 바와 같이 모든 생명을 사랑하고 아끼는 자비심으로 빈대나 벼룩마저도 죽이지 않았다. 간혹 누가 아프다고 그이의 기도를 받고자 원하는 사람이 있었는데, 그때마다 “나는 신이 아니오” 하고 거절했다.
이현필은 복음의 삼덕을 순결, 청빈, 순명으로 보았고 이를 위해 수도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정식으로 기독교 수도원을 배우지는 않았지만 그의 생활 저변에는 이미 기독교의 3대 서원을 그대로 살았던 인물이다. 그를 따르는 제자들도 자연스럽게 그와 마찬가지의 생활을 살았다. 그 실천적 장(場)이 되었던 곳이 바로 ‘동광원’이다. 동광원은 자생적인 수도 공동체로서 현재 남원에 본원이 있다.

김준호

(1924-2010, 해남 계곡면)

1924년 전남 해남에서 출생한 수련(受蓮) 김준호 선생은 1944년 일제에 의해 강제징용 당해 일본에 끌려갔다가 1945년 해방직후 한국에 돌아왔다. 의사가 되기 위해 공부하던 중 1946년 해남읍 교회에서 이현필 선생과의 운명적인 만남을 계기로 수행을 위해 출가하였다.

그리스도의 복음 정신 그대로 살고자 했던 이현필 선생을 스승으로 모시고 청빈·순명·정결이 녹아든 영성 생활을 하면서, 청년 김준호는 하느님의 섭리 아래 프란치스코 성인과 소화 데레사 성녀의 삶으로부터 감화를 받고 그들의 영성을 자신의 생애 안에 실현하고자 일생 동안 헌신하였다.

6.25동란 중 피난에서 돌아온 김준호 선생은 광주천 다리 밑으로 들어가 걸인들과 여러 해 동안 동거동락하였고, 1956년부터는 본격적으로 소화자매원의 전신인 ‘무등원’을 설립하여 오갈 데 없는 많은 결핵 환우들과 장애인들을 사랑으로 돌보았다. 그때 함께 봉사하면서 수도 정신으로 살고자 했던 자매들을 위해 1999년 1월18일 조철현 비오 몬시뇰과 함께 천주교 광주대교구 설립 수도회 ‘예수의 소화 수녀회’를 창설하였다.

1970년대 중반 사회복지 시설 운영에서 물러난 김준호 선생은 깊은 산속으로 들어가 관상의 삶에 몰입하였고, 교파를 초월하여, 찾아오는 많은 구도자들과 영적으로 교류하면서 그리스도교의 일치와 타 종교인들과의 대화를 몸소 실천하였다. “사랑을 살다, 사랑으로 죽는 것! 저의 희망 오직 이것 뿐!…” 평생 소화데레사 성녀의 시 ‘사랑을 살다’를 흠모하여 마음에 품고 온몸으로 사셨던 김준호 선생은 2010년 10월 27일 86세의 일기로 선종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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