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준호의 영적 여정 2)
1. 지지리의 밤, 시냇물 소리에 담긴 가르침
전라북도 장수군 지지리는 해발 600미터 고지에 있고 예전엔 화전민들이 살았다고 하는 아주 작은 시골 마을이다. 1978년 김준호가 요양을 위해, 그리고 자신의 수도생활을 위해 냇가 곁에 있는 땅을 구입하고 움막같은 초가집을 두 채 지어 시작한 곳이다. 양옆은 곧바로 험한 산세가 솟아있어 이곳에 햇빛이 비추는 시간은 들판에 있는 시간보다 훨씬 짧다.
밤이 되면 남녁에 떠가는 달을 보게 된다. 김준호 선생은 곁에 앉은 자매들 또는 방문한 분들에게 가끔 이런 말씀을 했다. “달아, 너는 본래 빛이 없었지. 네 빛은 태양의 반사일 뿐이야. 우리 사람도 이 달과 같지 않소? 우리 안에는 본래 사랑이 없었지만, 하나님의 사랑이 우리에게 부딪혀 반사될 때 비로소 우리 혼에서 빛이 나기 시작하는 것입니다.”
또 어느 때는 시냇물 소리를 가리키며 덧붙였다. “옛날 중국 송대의 ‘소동파’라는 시인은 골짜기의 시냇물 소리가 곧 부처의 설법이고 산의 빛깔이 곧 청정한 몸이라 했소. 내 귀에는 이 물소리가 주님의 복음으로 들리고, 저 푸른 산이 주님의 옷자락으로 보이요. 만물은 하나님의 본질을 드러내고 있는데, 우리가 눈을 감고 있어 보지 못할 뿐이지요.”
김준호의 내면세계는 깊은 관상(觀想)의 세계를 거닐고 나온 깨달음의 말씀이었다. 그에게 자연계의 모든 사물 하나하나는 남이 아니라 마치 하나님이라는 한 뿌리에서 난 거대한 가족이었다.
2. 히브리서 2장 11절에서 파격적인 ‘동성동본(同姓同本)’의 선언
김준호가 평생을 바쳐 마음에 파고 들었던 성경 구절 중 하나는 히브리서 2장 11절이었다. 그는 이 말씀을 통해 인류가 지닌 비천함의 껍질을 벗겨내고, 하나님의 자녀라는 영광스러운 신분을 회복시켰다는 것이다.
“사람을 거룩하게 해 주시는 분인 예수님과 거룩하게 된 사람들인 우리는 모두 같은 근원에서 나왔소. 근원(根源)이란 뿌리와 샘을 뜻하는데, 예수님과 우리는 하나님이라는 한 뿌리에서 난 ‘동성동본(同姓同本)’의 형제지간이라는 말이죠.”
예수님은 멀리 계신 심판하시는 주님이 아니라, 우리와 피와 살을 나눈 ‘오빠’나 ‘형님’ 같은 정다운 존재라는 것이 그의 확신이었다.
“예수님께서 우리를 형제라 부르기를 부끄러워하지 않으신 까닭은 우리가 한 피를 나눈 가족이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인생의 거리를 헤매며 죄를 짓고 병들었을 때, 오빠 되시는 예수님은 우리를 찾아와 무조건 용서하고 품에 안아주셨습니다. ‘내 아버지가 곧 너희 아버지다’라는 그분의 선언은 온 인류에게 내린 최고의 상속 선언입니다.”
3. 신토불이(身土不二): 흙과 바람 속에 숨은 사랑
김준호의 동체(同體) 사상은 인간을 넘어 대자연의 기본 원소의 하나인 흙에까지 확장되었다. 그는 우리가 먹는 밥 한 그릇, 우리가 마시는 숨 한 모금이 모두 하나님의 지극한 대접이자 일치의 증거라는 것을 감지했다.
“보십시오. 저 땅의 흙이 채소가 되고, 그 채소를 우리가 먹어 우리 살과 피가 됩니다. 그러니 흙과 몸은 둘이 아니라 하나(身土不二)입니다. 우리가 내뱉은 이산화탄소를 저 나무가 마시고 우리에게 산소를 돌려주니, 저 나무의 폐가 곧 나의 폐이고 바람과 몸 또한 하나(身風不二)인 셈이지요.”
그는 한때 프란치스코 성인에 매료되어 그와 같이 살려고 몸부림쳤던 때가 있었다. 이런 프란치스코 성인이 태양을 형제라 부르고 달을 자매라 부른 것처럼, 단순한 시적 표현이 아니라 만물이 본질적으로 한 몸이라는 사실을 꿰뚫어 본 ‘견성(見性)’의 결과라고 설명했다.
“이공(이세종) 스승님은 고추 모종을 심으려다 사모님이 잡초로 뽑아낸 풀 한 포기도 뒤따라 가면서 그걸 모아 다른 곳에다 심어주고 물을 주셨습니다. 자비심이 있으면 풀 한 포기에서도 그리스도의 선성(善性)이 보이기 때문입니다. 만물이 주님의 발등상이고 옷자락인데, 어찌 하나님을 사랑한다면서 그분의 옷자락인 만물을 미워할 수 있겠습니까?”
4. 광주천 다리 밑 가장 낮은 곳에서 만난 예수
6·25 전쟁 중 1950년 9월 광주가 수복되자 그해 말 이현필 선생과 함께 김준호는 피난에서 광주로 돌아온 직후, 그는 광주천 다리 밑에서 걸인들과 함께 10년을 살며 스스로 ‘만물의 찌꺼기’가 되었다.
어느 추운 겨울, 이현필 스승은 김준호에게 자신이 덮던 유일한 이불을 다리 밑에서 병이 걸려 죽어가는 걸인 청년에게 가져가 덮어주라고 명령했다. 김준호는 처음엔 스승이 얼어 죽을까 걱정되어 원망하는 마음으로 길을 나섰으나, 문밖을 나서자 미처 발견하지 못한 눈길에 넘어졌다. 김준호는 내심 이 일이 달갑지 않았기에 그 핑게로 그날 전달하지 못하고 잠을 잤다. 다음 날 아침 스승의 명령인데 하고 양심에 걸리자 다시 이불을 가지고 급히 다리 밑으로 갔다. 그곳에서 청년 곁에서 돌보고 있던 걸인 소년들이 손수 얻어온 밥을 내밀면서 김준호에게 먹으라고 했다. 아침도 거르고 그곳에 가면서 오늘 무얼 먹을까 걱정이 많았던 김준호에게 뜻하지 않게 환대해준 걸인 소년들을 통하여 큰 깨달음을 얻었다.
“다리 밑 소년들이 내민 시커먼 깡통 속의 밥 한 덩이…. 그것은 하나님이 차려주신 사랑의 성찬이었습니다. 그 더러운 깡통 속에 예수님이 계셨고, 그 깡통 밥을 통해 나는 하나님의 현존을 먹었습니다. 내가 돕는다고 생각했던 그 불쌍한 이들이 사실은 내 생명을 살리는 은인이었습니다.”
5. 공명(共鳴)의 원리와 성모성
김준호는 공동체 안에서 일어나는 시시비비와 갈등을 해결하는 열쇠 역시 ‘동체(同體)’에서 찾았다.
“우리가 남을 미워하는 이유는 우리 안에 저 사람과 똑같은 죄의 성품이 있기 때문입니다. 유리컵 두 개 중 하나를 때리면 옆의 컵이 덩달아 울리는 ‘공명’의 원리와 같습니다. 저 사람이 미워 보일 때 ‘그 죄인이 바로 나다’라고 고백하면 미움은 사라지고 눈물이 나옵니다. 상대방을 무조건 예수님으로 보아버리는 것, 그것이 천국입니다.”
그는 공동체가 엄격한 율법인 ‘성부성(聖父性)’에만 머물러선 안 되며, 모든 허물을 덮어주는 따뜻한 ‘성모성(聖母性)’을 회복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어머니는 자식이 똥오줌을 못 가려도 미안해하며 품어줍니다. 이 우주적인 어머니의 마음이 계승될 때, 비로소 너와 나의 구별이 사라지는 일치(不二)가 이루어집니다.”라고 말했다.
6. 상호 내주의 신비와 부활의 나비
김준호는 인생의 종착역을 요한복음 14장 20절의 신비로 정의했다.
“그날에 너희는 내가 아버지 안에, 너희가 내 안에, 내가 너희 안에 있음을 알게 될 것이다.”
주체와 객체의 담이 허물어지는 이 자리가 곧 천국으로, 계란 껍질 속에 갇힌 벌레가 자기를 죽이고 껍질을 깰 때 새가 되어 우주를 날듯이, 이기적인 ‘아상(我相)’을 십자가에 못 박을 때 우리는 비로소 그리스도와 하나 된 ‘진아(眞我)’로 부활하다고 보았다. 그때는 내가 죽었기에 나는 무아(無我)이고, 무아이기에 온 세상 존재, 심지어는 우주까지도 품는 복을 누리게 된다고 했다.
“임께서 못박히신 십자가의 비밀은 평화였나이다.
임께서 친히 못박히셨기에 우주가 저토록 고요합니다그려!
십자가는 고요함 바로 그것입니다.
십자가는 무엇입니까? 무아가 곧 십자가입니다.( 내가 죽었기에 나는 무아입니다.)
도란 무엇입니까? 그는 십자가입니다.
진리는 무엇입니까? 그는 무아입니다.
생명이란 무엇입니까? 그는 사랑입니다.
자기를 부인한다는 것 바로 그것입니다. 아상(我相)을 버린다 함은 바로 그것입니다. 욕망을 버린다 함은 바로 그것입니다.
그곳에 평화가 있고, 안식이 있고 그곳에 기쁨이 있고, 바로 사랑이 있었나이다.
오! 바로 그곳에 하느님이 계시고 예수님이 계시고, 성령님이 계셨나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