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심었고 아볼로는 물을 주었으되 오직 하나님께서 자라나게 하셨나니.”(고전 3:6)
문득 내 안에서 이기적인 욕심과 부정적인 생각들이 올라올 때가 있습니다. 내 마음대로 하면 잘될 것이라는 생각, 나의 이익을 먼저 챙기고 싶은 마음, 누군가를 미워하고 판단하는 생각입니다. 그럴 때면 섬뜩해집니다.
“하나님, 제 안에 무엇이 있기에 이런 생각이 떠오릅니까? 이런 마음으로 어떻게 사랑하고 평화를 이루겠습니까?”
가라지의 비유가 떠오릅니다.
“주여! 밭에 좋은 씨를 뿌리지 아니하였나이까? 그런데 가라지가 어디서 생겼나이까?”, “원수가 이렇게 하였구나” 가라지를 뽑아버릴까요 하고 묻자 주인은 뜻밖의 말을 합니다. “가만두라. 둘 다 추수 때까지 함께 자라게 두라.” (마 13:27–30)
내 마음 밭에 좋은 씨만 있는 것은 아니란 것을 본문은 말합니다. 살아오면서 받은 상처, 다른 사람에게 돈을 떼이고 사기를 당했던 일들, 실망하고 배신당했던 경험들이 내 안에 쌓여 내가 원하지 않는 생각으로 불쑥불쑥 올라오나 봅니다. 흑암의 깊은 곳에서 올라오는 표정입니다. 하지만 신앙은 망각의 은총과 함께 지난 일들로 흘려보내며, 사랑과 평화로 조금씩 희석해 가며, 어느 순간 내 마음에 평화가 자리 잡기 시작하는 것을 느낍니다. 상처의 기억이 완전히 사라진 것은 아니지만, 더 이상 그 기억이 나를 지배하지는 않습니다.
이제 한 가지를 깨닫습니다. 생각이 떠오르는 것과 그 생각을 선택하는 것은 같은 일이 아니라는 것을. 상처와 원망, 욕심과 부정적인 생각이 올라온다고 해서 그것들이 내 삶의 주인이 되어야 하는 것은 아닙니다. 나는 그 생각을 바라보고 분별하며, 다시 사랑과 평화의 길을 선택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생각이 올라올 때 잠시 멈추어 묻습니다.
“이 생각은 어디에서 오는가?”
“이 길이 그리스도의 평화를 이루는 길인가?”
“이것이 나의 생명을 살리는가?”
어쩌면 이 작은 멈춤과 분별에서 성화가 시작되는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성화는 내 힘으로 마음속의 가라지를 모조리 뽑아 깨끗한 밭을 만들 수 없습니다.
“씨가 나서 자라되 어떻게 그리 되는지를 알지 못하느니라” 처음에는 싹이요, 다음에는 이삭이요, 그 다음에는 충실한 곡식이 됩니다(막 4:26–28).
나는 그 씨가 어떻게 자라는지 알지 못합니다. 다만 어느 순간 돌아보면 예전에는 미움이 먼저 올라왔는데 이제는 지난 일의 기억이 되며, 나만 잘되기를 바랐는데 이제는 “나도 저 사람도 함께 행복할 수 있는 길은 없을까?”라는 생각이 조금씩 생겨납니다. 그때 비로소 깨닫습니다. 내가 나를 변화시킨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지금까지 내 안에서 일하고 계셨다는 것을.
사도바울의 말처럼
“나는 심었고 아볼로는 물을 주었으되 오직 하나님께서 자라나게 하셨나니.”
나는 씨를 뿌리고 물을 줄 뿐입니다. 오늘 미움보다 사랑을 선택하고, 욕심보다 나눔을 선택하고, 판단보다 자비를 선택합니다. 실패하면 다시 시작하고, 넘어지면 다시 하나님께 돌아갑니다. 그렇게 반복되는 선택은 기도가 되고, 기도는 습관이 되고, 습관은 조금씩 나의 성품을 변화시킵니다. 하나님의 은총이며 선물입니다.
그러므로 내 안에서 가라지가 보인다고 너무 절망하지 않으렵니다. 그것을 억지로 뽑아내려다 오히려 좋은 씨까지 상하게 하지 않겠습니다. 대신 오늘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하겠습니다. 내 안에 하나님께서 심으신 사랑과 자비와 평화의 씨앗에 물을 주겠습니다. 그리고 기다리겠습니다. 내가 알지 못하는 사이에도 씨앗은 자라고 있기 때문입니다. 싹이 나고, 이삭이 되고, 마침내 열매를 맺게 하시는 분은 하나님이시기 때문입니다.
주님,
내 안의 가라지만 바라보며 절망하지 않게 하시고,
주께서 제게 주신 생명의 씨앗을 바라보게 하소서.
오늘도 사랑을 선택하고 평화를 선택하게 하시며,
내 마음의 토양이 조금씩 그리스도의 마음으로 바뀌어 가게 하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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