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듭남은 단순히 과거 어느 순간에 일어난 종교적 사건만을 뜻하지 않는다. 그것은 삶의 근원이 ‘아래로부터의 나’, 곧 욕망과 자기중심성과 자신의 힘에서 ‘위로부터 오시는 하나님’, 곧 성령의 이끄심으로 옮겨지는 새로운 삶의 시작이다. “사람이 거듭나지 아니하면 하나님의 나라를 볼 수 없느니라(요3:3)” 거듭남을 ‘위로부터 남’이라는 의미로 제시한다.(‘거듭나지’로 번역된 헬라어 ἄνωθεν(아노텐)은 ‘다시’와 함께 ‘위로부터’라는 의미를 가진다.) 그래서 거듭난 사람에게 중요한 것은 욕망이나 부정적인 생각이 전혀 생기지 않는 상태가 아니라, 그것들이 일어나는 순간마다 무엇이 자신을 이끌고 있는지를 분별하고 성령의 방향을 선택하며 살아가는 것이다. 바울도 육체의 욕망과 성령의 소욕이 서로 대립한다고 말한다(갈 5;16-17).
그러나 그 선택조차 인간의 의지와 노력만으로 완성할 수 없다. 바람을 사람이 일으킬 수 없듯이 성령의 역사도 사람이 만들어낼 수 없다. 예수께서는 “바람이 임의로 불매 네가 그 소리는 들어도 어디서 와서 어디로 가는지 알지 못하나니 성령으로 난 사람도 다 그러하니라”라고 말씀하셨다(요3:8). 바로 여기에서 거듭남은 은혜와 만난다.
인간은 스스로 자신을 새롭게 만들 수 없으며, 성령의 열매도 자신의 노력만으로 만들어낼 수 없다.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은 기도하고, 말씀 앞에 머물며, 욕망과 감정에 즉시 끌려가지 않고 잠시 멈추어 하나님께 자신을 열어 두는 것이다. 예수께서는 “하늘 아버지께서 구하는 자에게 성령을 주시지 않겠느냐”(눅11;13) 라고 말씀하셨으며,히브리서는 하나님의 말씀이 “마음의 생각과 뜻을 판단한다”(히4:12)고 말한다. 이것은 은혜를 얻기 위한 조건이나 공로가 아니라, 은혜 없이는 살 수 없음을 인정하며 은혜를 받아들일 자리에 자신을 두는 태도이다. 이러한 삶의 바탕에는 자신의 약함을 인정하는 태도가 있다. 바울이 들은 말씀처럼 “내 은혜가 네게 족하도다 이는 내 능력이 약한 데서 온전하여짐이라.”(고후12:9) 내가 할 수 없음을 인정하는 바로 그 자리에서 하나님의 은혜에 자신을 맡기는 삶이 시작된다.
그러므로 거듭나는 삶은 은혜와 선택이 만나는 삶이라고 할 수 있다. 하나님께서 먼저 은혜를 주시고 성령께서 이끄시지만, 인간은 그 은혜에 응답하여 사랑과 자비와 평화의 길을 선택한다. 그 작은 선택들이 반복되면서 삶의 방향이 조금씩 바뀌고, 사랑과 희락과 화평과 오래 참음과 자비와 양선과 충성과 온유와 절제라는 성령의 열매가 삶 속에 맺히게 된다(갈5:22-23). 이것이 거듭남 이후 계속되는 성화의 과정이며, 하나님의 다스림이 우리의 일상 속에서 구체적으로 나타나는 하나님 나라의 삶이라고 볼 수 있다. 농부가 비를 내리게 할 수는 없지만 밭을 갈고 씨를 뿌리며 비를 기다릴 수 있듯이, 우리도 생명을 만들어낼 수는 없지만 기도하고 말씀을 묵상하며 기다리고 응답할 수 있다. 바울의 고백처럼 “나는 심었고 아볼로는 물을 주었으되 오직 하나님께서 자라나게 하셨나니.”(고전3:6-7) 비는 하나님께서 주시는 은혜이고, 생명을 자라게 하시는 분도 하나님이시다.
따라서 거듭난 삶의 가장 깊은 고백은 “내가 나를 변화시키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나를 변화시키신다. 나는 그 은혜 앞에 자신을 열어 두고, 오늘 주어진 순간마다 성령의 이끄심에 응답하여 한 걸음을 선택한다.” 거듭남은 한 번의 사건에서 시작되지만, 그 생명을 받아 살아가는 일은 매일 계속된다. 그래서 거듭나는 삶이란 내 힘으로 살아가려는 삶에서 벗어나, 위로부터 주어지는 은혜를 받아 성령의 이끄심을 따라 오늘을 살아가는 삶이라고 생각해본다.

은혜로운 귀한 말씀에 감사드립니다. 계속 좋은 글로 나눔을 주시면 고맙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