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75년 함평에서 영적 투쟁의 시작
1975년의 함평 분원은 동광원의 분원이면서 농사 짓는 곳으로 시골 한적한 곳에 있었다. 그러나 그곳을 요양지로 선택한 김준호의 나날은 정신과 육체는 마치 불지옥과 같았다. 그는 머리와 가슴에 벼락이 떨어진 듯한 통증을 느끼며 누워 있었다. 그것은 단순한 병이 아니었다. 선생은 이를 ‘영적 투쟁’이라 불렀다. 내면의 위선과 증오, 사람을 두려워하는 마음이 뜨겁게 타오르는 과정이었다.
“하느님, 왜 저를 이렇게 귀찮게 하십니까?” 김준호는 신음하며 물었다. 그때 그의 귓가에 환청처럼, 혹은 하느님의 음성처럼 한 마디가 꽂혔다. “내가 너를 귀찮게 하는 것이 아니다. 네 위선이 너를 시달리게 하는 것이다”.
그는 지난 20년간(1956-1975) 무등산 중턱 맑은 물이 흐르는 곳에 움막을 치고 수많은 결핵 환자들을 돌보았고, 광주천 고아들을 돌보고, 사회로부터 버려진 병자를 구제했던 자신의 삶을 되돌아보았다. 주변의 공동체 식구들은 그를 성자라 칭송하기도 했지만, 하느님의 빛 앞에서 드러난 자신의 실체는 주님께 ‘반역자’요 ‘원수’였다. 불쌍한 형제를 보고도 진심으로 불쌍히 여기지 않았고, 자선은 남의 눈이 무서워 행한 ‘억지 선’에 불과했음을 그는 처절하게 자복했다. ‘나’라는 단단한 자아의 껍질 아래 숨어있던 교만과 명예심이라는 고름이 터져 나오기 시작한 것이다.
신촌 굴의 교훈: ‘밥‘의 율법과 ‘물‘의 은총
김준호가 그곳에서 심적 육적인 고난의 시기를 보내는 동안, 그의 기억은 20년 전인 1955년 가을, 서울 수색의 어느 걸인 굴(일제강점기 때 지어진 대피호)로 거슬러 올라갔다. 그곳에는 임종을 앞둔 스승 이현필이 칠성판 위에 누워 있을 때였다. 스승은 목이 퉁퉁 부어 물 한 모금 넘기지 못하는 고통 속에서도 제자 김준호의 팔을 눈여겨보았다. 당시 김준호의 오른손은 골결핵으로 고름이 뚝뚝 떨어지고 있었다.
스승은 깨달았다. ‘나의 고집스러운 계율(불복약) 때문에 제자의 몸이 썩어가고 있구나’. 그때 이현필은 평생 지켜온 ‘불육식(不肉食)’의 계율을 깨고 고깃국물을 청하는 ‘파계’를 단행했다. 이것은 단순히 고기를 먹기 위함이 아니었다. ‘나’라는 도덕적 우상과 율법적 자아를 완전히 허물어버리는 의식이었다.
이현필은 후두결핵으로 목에서 말이 나오지 않았다. 대신 종이에 필담으로 주변에 있던 몇몇 제자들과 소통했다. “나는 평소에 밥(행위와 법)이 귀한 줄만 알았지, 물(그리스도의 보혈과 은총)이 귀한 줄은 몰랐다. 나는 이제 선행을 포기하고 오직 예수의 피를 의지하고 죽으렵니다”.
이 사건은 김준호에게 ‘자아 해체’의 본질 즉 신앙의 비본질적인 행위에 대한 잘못을 가르쳐준 계기가 되었다. 구원은 인간의 노력이라는 ‘밥’에 있는 것이 아니라, 거저 주시는 하느님의 자비라는 ‘생명수’에 있다는 사실이었다.
헌신짝이 된다는 것: 가장 비천한 자리의 평화
스승 이현필은 평생 자신을 ‘헌신짝’이라 불렀다. 기차 안에서 자리를 양보하다 결국 승강구 난간까지 밀려 내려가 앉으면서도, 자신의 성이 무엇이냐 묻는 한 시골농부에게 “헌 가요, 이름은 신짝이오”라고 답했던 스승이었다.
김준호는 함평의 고통 속에서 그 ‘헌신짝 영성’을 자신의 것으로 받아들였다. 자아 해체란 자신을 낡은 신발처럼 여겨 사람들이 밟고 지나가게 내버려 두는 것이다. 그는 광주천 다리 밑 걸인들과 함께 10년을 살며 똥오줌을 가려주던 시절을 떠올렸다. 세상의 명예와 자존심을 배설물처럼 여기고 낮아질 때, 비로소 성령이 임하시는 자리가 마련된다는 것을 그는 몸으로 익혔다.
“내가 죽었기에 나는 무아(無我)입니다”. 이 고백은 허무주의가 아니었다. ‘나’라는 짐을 주님께 맡겨버리고 얻는 안심입명(安心立命)의 상태였다. 쥐에게 말수레를 채워줄 수 없듯이, 비천한 인간이 자신의 힘으로 거룩해지려던 모든 시도가 멈춰질 때 하느님이 일하시기 시작했다.
누에 알의 진리와 나비의 비상
김준호는 자아 해체의 과정을 ‘알’과 ‘나비’의 비유로 설명했다. 껍질 속에 갇힌 애벌레는 자기가 전부인 줄 알고 살아가지만, 사실 그 껍질은 그를 가두는 감옥이다. 껍질을 깨는 힘은 외부의 타격이 아니라 내부에서 타오르는 고통의 열기, 즉 뜨거운 참회에서 온다는 사실을 체험했다.
누에가 고치 안에서 녹아 없어져야 나비로 부활하듯, 율법과 정욕에 매인 ‘옛 사람’이 죽어야만 그리스도 안에서 ‘새로운 피조물’로 날아오를 수 있다. 김준호는 병과 고통을 ‘혼을 깨우는 천사’이자 ‘생명의 껍질’로 이해했다. 껍질이 벗겨질 때는 아프지만, 그 과정이 있어야만 하늘을 나는 나비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인생은 네 집이 아니라 네 작은 배다”. 선생은 성녀 소화 데레사의 말씀을 빌려, 잠깐 타는 배와 같은 인생에 집착하지 말라고 권면했다. 배에서 내릴 준비를 하는 나그네는 짐이 가벼워야 하듯, 자아를 비워낸 혼만이 고향인 하늘나라로 가뿐히 돌아갈 수 있다고 했다.
자아 해체의 종착역은 죽음이 아니라 ‘무한한 환희’였다. 김준호는 스승 이현필의 임종을 지키며 그 광경을 목격했다. 찢어진 파자마 한 장만 걸치고 평토장을 유언하며 떠나던 스승은 “오매 기뻐! 내 심장이 찢어지도록 기뻐!”라고 외쳤다. 그것은 고행의 대가로 얻은 승리가 아니라, 자아를 비워낸 자리에 폭포수처럼 쏟아진 하느님의 조건 없는 자비에 대한 감격이었다.
김준호 역시 함평에서의 투쟁 끝에 그 평화를 맛보았다. “떠나는 기쁨, 버리는 평안”이라는 글을 쓰며 그는 남은 생애 그리스도께 온전히 귀의하는 결정을 했다. 선생의 삶은 신앙의 본질이 인간의 도덕적 수양이 아니라, 나를 부정함으로써 내 안에 그리스도가 사시게 하는 ‘무아의 사랑’에 있음을 손수 보여주면서 가르쳐 주었다.
이제 김준호에게 세상 만물은 하느님의 발등상이요, 꺾인 꽃 한 송이조차 주님의 사랑을 반사하는 거울이었다. 자아가 해체된 자리에 남은 것은 ‘나’가 아니라, 온 우주를 품은 ‘하느님의 사랑’뿐이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