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세기 12장은 매우 짧지만 강렬한 두 단어로 시작됩니다. לֶךְ־לְךָ (레크-레카) “떠나라, 너 자신을 위하여!” ‘레크(לֶךְ)’는 “가라, 떠나라”는 명령이고, ‘레카(לְךָ)’는 “너 자신을 위하여”, “너를 위해”라는 의미를 더합니다. 따라서 이 말씀은 단순히 장소를 이동하라는 명령이 아니라, “너를 살리기 위해 떠나라.” “내가 준비한 생명의 길을 향하여 나아가라.” 라는 하나님의 초청입니다. 하나님은 목적지를 먼저 설명하지 않으셨습니다. 먼저 떠나라고 하셨습니다. 믿음은 모든 것을 이해한 후 출발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을 신뢰하며 첫걸음을 내딛는 데서 시작됩니다.
- 왜 하나님은 먼저 “떠나라”고 말씀하셨는가?
이 질문의 답은 창세기 11장에 있습니다. 창세기 11장은 바벨탑 이야기로 시작됩니다. 인간은 하나님 없이도 자신의 이름을 높일 수 있다고 믿었습니다. 높은 탑을 쌓고 강한 도시를 만들면 안전할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 없는 문명은 결국 사람을 살리지 못했습니다. 인간은 흩어졌고 언어는 혼란스러워졌습니다. 이후 이어지는 셈의 족보는 계속해서
“낳고…”
“또 낳고…”
“또 낳았다.”
라는 표현으로 이어집니다.
생명이 계속 이어지는 것처럼 보입니다. 그런데 데라의 족보로 들어오는 순간 분위기가 완전히 달라집니다. 창세기 11장 27-32절 짧은 데라의 족보에는 두 번이나 죽음이 기록됩니다. 하란이 죽습니다. 데라가 죽습니다. 그리고 사라는 자녀가 없습니다. 족보는 생명의 계승을 말합니다. 그런데 자녀가 없다는 것은 족보가 더 이상 이어질 수 없다는 것을 뜻합니다.
죽음.
후사가 없음.
목적지에 도착하지 못함.
이 세 가지가 데라의 가문을 덮고 있습니다. 데라는 자식 하란의 죽음을 경험한 갈대아인의 우르를 떠나 가나안을 향하여 출발했습니다. 그러나 중간 하란에 머물렀습니다. 그리고 거기에서 죽었습니다. 목적지는 눈앞에 있었지만 끝내 들어가지 못했습니다. 바로 이 지점에서 우리는 아브람의 마음을 생각하게 됩니다. - 아브람은 어떤 마음으로 하란에 있었을까?
아브람은 이미 형(하란)의 죽음을 경험했습니다. 이제는 하란에서 아버지까지 잃었습니다. 자신에게는 자녀도 없습니다. 약속의 땅은 아직도 멀리 있습니다. 타향살이는 계속됩니다. 모든 것이 막혀 있습니다. 희망도 보이지 않습니다. 성경은 아브람의 감정을 직접 설명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하란(사람)과 하란(지명)의 표기를 다르게 함으로써 아브람의 답답한 마음을 표현한 것 같습니다. 하란(사람): הָרָן (Haran), 하란(지명): חָרָן (Ḥaran) 둘은 첫 글자가 달라 발음도 다릅니다. 지명의 첫 글자 ח(헤트)는 목에서 나는 강한 소리로 ‘학란’으로 읽을 수 있습니다. 그 뜻은 ‘햇볕에 바짝 마르다’, ‘메마름’을 뜻합니다. 성경이 직접 그렇게 설명하는 것은 아니지만, 그곳에서 머물러야 했던 아브람의 심정은 마치 메마른 광야와 같았음을 생각하게 합니다. 갈 곳도 없고, 돌아갈 곳도 없고, 기다릴 희망도 없는 답답함, 바로 그때 하나님의 명령이 들려옵니다. “레크-레카. 떠나라, 너 자신을 위하여!”
하나님은 “우르를 떠나라. 하란을 떠나라.” 라고도 말씀하지 않으셨습니다. 하나님은
죽음의 현실을 떠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만약 아브람이 떠나지 않았다면 어떻게 되었을까요? 그는 아마 미쳐버렸을지도 모릅니다.
절망을 떠나라.
상처를 떠나라.
과거를 떠나라. 내가 준비한 희망으로 오라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떠남은 장소의 변화가 아니라 삶의 방향의 변화입니다.
- 그런데 아브람은 정말 다 버리고 떠났는가?
본문을 자세히 읽으면 매우 흥미로운 사실이 나타납니다. 12장 4절입니다.
“아브람이 여호와의 말씀을 따라갔고, 롯도 그와 함께 갔으며…”
이 문장은 일부러 여지를 남기는 것 같습니다. 롯이 스스로 따라왔다면 친척을 떠났다고 말할 수 있지만 아브람이 롯을 데리고 갔다면 말이 달라집니다. 성서 기자는 읽는 사람에게 질문을 던집니다. 정말 친척을 떠날 수 있는 것인가? 5절은 더욱 흥미롭습니다. 아브람은 사래를 데리고 갑니다. 롯도 함께 갑니다. 하란에서 모은 모든 재산도 가져갑니다. 사람들도 모두 함께 갑니다. 결국 아브람은 빈손으로 떠난 것이 아닙니다. 이것이 인간의 현실인 것 같습니다. 우리는 흔히 떠남을 모든 것을 버리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성경은 그렇게 말하지 않습니다.
사람은 가족이 필요합니다.
생활도 필요합니다.
재산도 필요합니다.
함께 살아갈 공동체도 필요합니다.
하나님은 인간의 연약함을 아십니다. 그래서인지 성경은 아브람을 미화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그의 인간적인 모습을 그대로 보여 줍니다. 이것이 성경의 놀라운 정직함이라 생각합니다.
아브람은 모든 것을 버리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한 가지는 분명히 바꾸었습니다. 삶의 중심을 하나님께 두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보다 앞서던 것을 하나님 뒤로 옮긴 것입니다. 믿음은 재산을 버리는 것이 아니라 재산보다 하나님을 앞세우는 것입니다. 가족을 버리는 것이 아니라 가족보다 하나님의 말씀을 먼저 두는 것입니다. 그래서 떠남은 우선순위의 변화입니다.
- 아브람의 길은 후손들의 길을 생각하게 한다.
아브람의 떠남은 그의 개인적인 결단으로 끝나지 않았습니다. 믿음으로 내디딘 그의 한 걸음은 훗날 후손들에게 이어질 믿음의 길을 열었습니다. 아브람의 여정은 갈대아 우르에서 시작되어 하란을 거쳐 가나안으로 이어졌습니다. 수백 년 후 바벨론 포로에서 돌아오는 이스라엘 백성도 비슷한 길을 따라 약속의 땅으로 돌아왔습니다. 성경이 그들이 아브람의 여정을 의식했다고 직접 말하지는 않습니다. 그러나 같은 하나님께서 아브람을 약속의 땅으로 인도하셨듯이 그의 후손들도 다시 약속의 땅으로 인도하셨습니다. 한 사람의 믿음과 순종은 그 사람으로 끝나지 않습니다. 아브람이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 내디딘 한 걸음은 한 가정의 길이 되었고, 한 민족의 역사가 되었으며, 하나님의 구원 역사의 출발점이 되었습니다.
아브람으로 시작된 하나님의 언약은 이스라엘의 역사 속에서 이어졌고, 마침내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완성되었습니다. 아브람이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 떠났듯이, 예수께서도 아버지의 뜻에 순종하여 십자가의 길을 걸으셨습니다. 물론 아브람의 길과 예수의 십자가의 길은 같지 않습니다만 하나님의 뜻을 신뢰하며 먼저 순종의 길을 걸으셨다는 점에서, 예수께서는 오늘 우리가 따라가야 할 완전한 순종의 본이 되셨습니다. 예수께서 먼저 그 길을 걸으셨기에 오늘 우리는 그분의 뒤를 따르는 제자가 되었습니다. 믿음은 앞서 걸어간 믿음의 사람들의 발자취를 따라가는 것이며, 동시에 오늘 내가 걷는 길이 다음 사람에게 믿음의 흔적이 되는 것입니다.
글을 마무리하며
오늘 하나님께서도 우리에게 말씀하십니다.
“레크 레카.”
죽음이 있는 자리에서 떠나라. 절망에서 떠나라. 두려움에서 떠나라. 상처에 머물지 말라. 과거의 실패에 갇혀 있지 말라. 내가 보여 줄 약속의 땅으로 나아오라.
아브람은 하나님의 말씀을 믿고 한 걸음을 내디뎠습니다. 그 순종은 하나님의 언약 역사 속에서 이어져 마침내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완성되었습니다. 오늘도 하나님은 우리를 부르십니다. “레크 레카. 너는 떠나라. 너를 위하여, 내가 네게 보여 줄 길이 있다.”
